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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4. 18:24 - Samantha

요즘20대, 스토리를 포기하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지난 일요일,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엄친딸 중 한명이 3000만원 대 연봉을 받다가 5개월 만에 때려쳤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친구와 나는 초/중/고를 함께 다녔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진짜 엄친딸 중 한명이었다. 왠지 그 친구와 나는 어느 날부터 멀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엄마를 통해 겨우 최근 근황을 건너 들어보고는 했다.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한 그 친구는 나름 잘사는 부모님 덕을 보고 중국에서 1년 간 유학생활도 마쳤으며, 그렇게 대기업까지 들어가서 오래 잘 다닐 줄 알았다. 체육도 곧 잘했던 그녀는 절대 나약함이라는 단어와는 멀었다. 끈기있게 잘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5개월 만에 그만뒀단다. 힘들다는 이유로.


이러한 사례들이 빈번하다. 6개월 만에 때려쳤다고 하고, 1주일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그네들이 살아온 인생을 기준으로 요즘 20대가 의지박약이라고, 정신이 나약하다고 말한다. 애들은 아르바이트도 쉬운 것만 골라서 하는 등 몸을 사린다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쉬운 길을 택하고, 소위 이른 바 대기업만 지원할 줄 안다고, 고생은 모르는 세대라고 혀를 끌끌찬다.


하지만 다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으로 쉽고 어렵다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다.사실 우리세대는 늘 스토리,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당하고 있다. 공모전에 떨어진 사연마저 각색해서 ‘비록 실패는 했지만, 저에게는 큰 자산이자 경험이 되었다’라고 포장해야 하는 마당에 우리에게는 하찮고 고생스러운 일을 해야 할 시간따위는 없다. 스토리, 스토리 없는 일과 경험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자신의 인생,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라 여기며 대학공부까지 마친 20대에게 사회생활은 왠지 낯설다. 자기다움, 개성을 포기하고 회사의 색깔과 사내 분위기에 자신을 억지로 껴맞춰야 한다. 대학생활까지는 자신이 설계한 인생, 그리고 동아리생활, 그 결과로 만들어진 포트폴리오. 자신을 조명하고, 자신의 인생에 색깔을 덧입혔고, 그래서 그 덕에 입사까지 했는데, 이제는 나를 죽이고 회사의 부품처럼 살아가야 한다니….. 그 현실 앞에 요즘 20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전부였던 인생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라고 강요당하는 게 부당하고 부조리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개성이 있는 내가 좋다며!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한 게 신선하다고 좋다며! 내 스토리가 회사의 가치간과 부합하다며! 그런데 이젠 그런 내가 싫다면 난 어쩌자는 거지? 난 그게 옳은 것인 줄 알았단 말이야!!”


20대 청춘을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험을 쌓는 데 올인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 바로 대한민국 취업시장이다. 예전과는 달리 열정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없다. 차별화된 경험, 차별화된 회사경험, 차별화된 수상이력을 내세워도 회사에 붙을까말까다. 그렇게 윗사람들이 원하는 요즘20대의 스펙은 높아져만 가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요즘 20대는 자신의 이력서에 넣을 수 있을 만한 경험을 찾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나 때는 막노동 해가면서 대학 등록금 마련하고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서 우리 가족 먹여 살렸어. 그런데 요즘 20대는 뭐냐? 취업난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구인시장 가봐, 일자리가 넘치고 넘쳐. 그런데 들어가서 일만해도 지 먹고 살정도는 되겠다. 요즘 20대는 고생도 안해보고 죽는 소리 실컷 하고 자빠지고 있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자리가 넘치고, 그 일자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정도는 된다. 그런데 넘치는 일자리가 일용직, 단기일자리, 인턴이라는 게 문제다. 내가 가정을 꾸리고, 한 식구를 먹여살리고 노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용이 불안정하다. 일을 하다가 계약이 만료되면, 또 언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녀계획은 커녕 결혼계획마저 무산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자리만 넘쳐나는데 어느 20대가 무턱대고 아무 일자리나 갖겠다고 나설 수가 있을까. 단기 아르바이트, 인턴으로 전전하다가 계속 그렇게 임시직을 전전해야 한다.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이러니 정직원과의 다른 처우를 제공하는 그런 일자리를 요즘 20대가 처다볼리 만무하다. 또한,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아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곤란하다. 우리는 이력서를 통해 그 어떤 이야기라도 채워넣어야 한다. “아니, 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뭐했길래 경력이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는, 적어도 가공이라도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책읽고, 아르바이트했다고 하면 바로 탈락이다. 80만원을 주는 일이라도 어디서라도 일했다는, 경력을 보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이를 읽기좋은 스토리로 각색해야 우리는 취업의 문에 겨우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데, 단순히 고생스러운 일자리를 선택할 턱이 없다. 스토리를 제공해주지 못할 것 같은 일자리는 애시당초 쳐다도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자리는 넘치고 터지지만, 우리는 우리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담을 수 없는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한 방황, 그러한 경험은 경험이라고 쳐주지 않는 사회가 20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입사를 희망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또다른’ 이름난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그 이외의 일자리는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왜냐? 요즘 스토리 없는 20대는 삶을 낭비한, 쓸모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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