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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3. 12:51 - Samantha

죽은 성폭행 피해자만 억울한 대한민국

이번 설 연휴는 심적으로 괴롭기 짝이 없던 명절이었다. 7년 전 엄마 친구 딸로 소개받아 약 4개월 간 영어 과외를 했던 친구가 설 명절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후배이자 엄마친구딸이었던 그 친구는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집에 들러서 영어 공부를 하고는 했다. 내준 과제를 제대로 했었어야 했는데 해오지 않은 날이 많아 미운 날이 많았지마는,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얼굴은 예쁘장했고 나중에 20살이 되면 남자친구는 많이 사귈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이미지 출처 : http://feminspire.com/wp-content/uploads/2013/01/victim-blaming-2.png


사건은 이렇다. 미용일을 배웠던 그 친구는 최근 동네 어느 미용실에서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점장이라는 여자는 40대 초반, 신입도 들어왔겠다 해서 자체 회식을 가졌나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다. 점장이 데려온 동년배의 ‘남자’인 친구가 이 회식자리에 끼면서부터다. 전해들은 말로는(경위는 건너건너 들었기 때문에 소스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 남자가 건넨 술잔을 이 친구가 받아먹었고, 한잔을 먹고 바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깨어나보니 어떤 모텔방에 옷이 모두 벗겨진채로 놓여있었다는 것. 즉, 범행 수법으로 봤을 때는 약탄 술을 먹여서 성폭행(강간)을 한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친구가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알렸더라면 사건을 해결하고 심리치료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극도에 달한 수치심 때문에 지난 2월간 집에 와서 술만 먹고 한사례 자살 시도(수면제 과다복용)를 벌였다고 한다. 그 문들어진 속을 말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딸자식 가진 부모가 딸의 아픔을 헤아려볼 수나 있었을까. 결국에는 그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나는 극단의 방법을 취했다고 한다.

나이값도 못한 짐승새끼때문에 그냥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 친구의 젊음이 너무 안타까워서 계속 괴로워했다. 설 연휴 밤에는 연이어 외부에서 침입한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는 꿈까지 꾸기도 했다. 정신과 육체 모두 피폐해지고 몸살감기마저 얻게 됐다. 사실 어떻게 따지고보자면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지마는, 그래도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에 감정 이입을 하다보면 정말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 미통한 마음을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마음으로, 몸으로 대신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일에도 이렇게 비통할 따름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이 아이의 부모는 딸을 곱게 보내주고 싶다며, 더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사건을 덮는다고 한다. 사실 피해자에 해당하는 당사자가 이미 가고 없으니 더이상 조사가 진척될 일도 없거니와, 범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도 마땅치않아서 오히려 ‘무고죄’로 소송당할 상황이다. 지금 그 파렴치한은 발뻗고 자고 있겠지? 그런데 무서워서 어디 밤에 빨뻗고 잘 수는 있을까 싶기는 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방년 25살밖에 되지 않은 그 친구가 어디에서 한을 품고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도 된다. 엄마는 그 인간같지도 않은 놈 나중에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내비첬는데,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아마도 그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한 두 번 그래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분명 제2의, 제 3의 피해자가 어디엔가 또 있을 것인데 이렇게 사건을 덮어야하나 싶은 마음도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을 내리면 뭐하나, 많아봤자 6년형 받고 복역하고 나와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는 이 마당에. 정말 이 개한민국에서는 딸자식 제대로 키우기도 벅착 나라다. 어찌보면 죽은사람만 억울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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