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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8. 13:02 - Samantha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완성됐고, 지금의 나는 미래를 완성한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보려면 지금의 내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지금 내가 뭘하고자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내 미래를 고민한 여유가 없었든지, 지금 하는 일에 지나치게 매몰돼서 하고 싶은 꿈조차 잊고 살아가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취미삼아 하는 일거리가 있는데, 바로 8살 때 쓴 일기장나 중학교 3학년 떄부터 쓴 플래너를 열어보는 것이다.


사실 8살때부터 13살, 초등학교 시절을 기록한 일기장은 지금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 마치 무한도전의 ‘토토가’처럼 추억을 회상하는 용도다. 본격적으로 내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내려갔던, 지난 10년의 시간을 기록한 플래너나 다이어리가 조금 더 와닿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중학교 3학년 선생님과의 추억을 발견했다.


중학교 3학년, 즉 16살 때 만났던 선생님은 당시 전학년을 통들어서 인기가 좋았던 분이다. 물론, 담임 선생님으로 만나지 못했더라면 관계가 180도는 달랐을 것이라고 예상해보는데, 그만큼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보통 외부 학습은 학년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은 분기별로 아이들을 밖으로 이끌고나가 다양한 것들을 즐기고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반과 합쳐서 서울랜드로 캠프파이어를 가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CD 앨범을 만드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답례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책을 선물받기도 했고.

학년 말에는 선생님이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한국인 학교로 전근간다는 말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도록 울면서 선생님을 원망하고는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 사활을 걸었으며, 모든 고민과 걱정거리를 선생님께 털어놓고는 했다. 담임선생님을 신뢰했고, 존경했고, 그래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난 학생처럼 굴고는 했다.(당시 선생님은 미혼이었고, 아이들의 우상은 연상, 자상한 남자였으니 어린 여학생의 눈에는 선생님이 최고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때 당시에 핸드폰이 없던 나는 엄마 핸드폰으로 선생님과 연락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그때는 단순히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는데, 메시지함이 다 차면 오래된 메시지부터 지워지던 핸드폰인지라 메시지를 영원히 기억할 방도를 마련해야만 했다. 지금과는 달리 80자 안에 모든 것을 표현했던, 그래서 함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메시지를 수신하자마자 동시에 다이어리에 한줄씩 써내려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 뒤로 다시 읽어보지 않았던 그 문자를 근 10년만에 다시 읽어보게 된 것이다.

그 때는 선생님을 남몰래 짝사랑하던 여학생의 감정에 이입하느라 선생님이 보여주신 관심, 애정(물론 제자에 대한)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나서야 선생님이 얼마나 제자가 옳은 길을 가길 원했는지를, 이제야 알게됐다. 무한한 신뢰, 그리고 끊임없는 격려. 좋은 말이 많아서 그 가운데 몇 개를 간추려봤다.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지금도 전해지는 듯 하다.

- 그래 천천히 준비해 오거라. 원래 성실하니까 잘할꺼라 믿는다.

우리딸 고생했네. 최후의 만찬은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단다. 원래 예술 자체가 노가다야 잘자^^

- 너무 마음쓰지 말고 해보거라. 잘 할거야 힘내고

- 좋은 책을 읽는구나 비판적으로 읽고 한자공부도 열심히 하거라

- 선생님문이야 언제든지 열려있지. 다음주쯤 시간을 내보자구나.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당시 진학문제로 선생님을 많이 괴롭혔다)

- 너가 못하면 다 못하는거야.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혀야지. 선생님은 수경이를 믿는단다.

- 다 그렇지뭐, 고민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란다. 조금씩 걸어가면 되는거야

- 너무 겁먹지 말거라. 다 할 수 있으니까 내는 거란다. 자신감을 가져라.

- 메일로 다 얘기를 해보려무나. 선생님이 너한테 그정도 믿음은 준 것 같은데

- 책은 그런 거 따지지 않고 그저 다독하는 게 가장 좋단다, 열심히 하거라

-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존경심도 생긴단다

- 선생님은 너희들을 사랑하는 거지, 단순히 좋아하는 게 아니다 


선생님은 말끝마다 고맙다, 이야기해보자, 고생이 많다, 같이 해보자구나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어 생활비를 벌고, 좋은 학점을 받느라 앞만 보고 내달려야 했기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제자의 가능성을 믿어준 선생님은 유일하게 중학교 3학년 담임썜뿐이었다.

초중고 합쳐 12년간 만난 선생님 가운데 가장 많은 추억과 신뢰를 쌓은 사람이기에 그만큼 가장 많이 기억나기도 하고, 유일하게 한 번쯤 되돌아가고픈 과거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담임 기간 동안 방과후 모든 시간을 학생들에게 투자했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며, 제자들이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떄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부모님처럼 학생들을 대해줬다. 비단 담임 학생 뿐만 아니라,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언제나 엄한,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어줬다.

누군가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 이런 교육관을 지닌 선생님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이런 선생님 누군가의 인생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니 있었다면 많은 이들의 인생은 지금과는 다르게 흘러갔을 수도 있다. 평생 잊지 못할 은사 한 분이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후의 내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ps. 물론, 고등학교 1, 2학년 때 이에 버금가는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면 정말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담임선생님 운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왔는데, 너무 늦은 듯 했다. 좋은 선생님은 하루라도 빨리 만나는 게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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