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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8. 23:36 - Samantha

열정페이? 연봉과 직장/직업에 대한 경외심은 비례한다

현재 나는 취업 준비생이다.(2014년 06월 기준, 현재는 한 외국계 매체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2014년 하반기 15일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더욱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과 같는 느낌을 받고 있다.

사실 대학 졸업을 반 년 유예한 사이 스타트업에서 6개월 가량 일을 한 경험이 있고, 그 후 또다른 7개월동안 에디터의 경력을 살려 인턴 기자로 일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왜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면 말이 좀 길어질 것 같다.

사실 20대는 연봉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도’라는 게 있다는 것이 지난 1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결과다. 사실 어느 정도 먹고 살 수준이라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았는데, 일을 하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금액과 일정부분 타협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된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당시 초기 3개월간 받은 월급은 88만원, 그 이후 100만원 가량으로 늘기는 했는데 사실 돈의 액수는 내게 큰 의미는 없었다. 88만원으로도 충분히 저축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서울에 마련하신 집에서 통근을 했으며, 회사에서는 점심과 저녁 식대를 제공했기 때문에 한 달 교통비와 통신비, 그리고 용돈을 제외한 나머지는 충분히 저축할 수 있어서 크게 불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곧 부족한 월급은 일이나 회사에 다니는 내 태도에 조금씩 금이 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모든 회사가 한 사람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일거리를 제공하는데, 거의 2인분 이상의 일을 해야만 했던 그곳에서 때로는 88만원 수준 그 이상 그 이하의 열정을 보이기 싫은 날도 생기게 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더라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데, 그렇다면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하는데 왜 나는 굳이 스타트업에 들어와서 88만원을 받는 일을 택한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강도, 아니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데 똑같이 일해도 왜 나는 88만원 밖에 못받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때면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글을 쓰는 것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낙이었기 때문에 곧 다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일을 했지만 때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괴로워졌다. 88만원 값어치만큼의 일을 하고싶다라는 생각에 미칠때면 출근시간도 지키고 싶지 않을 만큼 게으름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고, 내 잘못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도 잦아졌다.

아르바이트로 한달 내내 일을 하더라도 120만원은 주는 상황. 아무리 일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큰 편이라고 할지라도, 그만큼의 월급이 받쳐주질 못하는 것은 지구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그래서 최소 월급은 120만원은 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된 것 같다.

물론 스타트업이니만큼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 대표와 월급에 대해서 협상을 할 때도 나는 만족했다. “그래도 이 정도의 돈을 받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어디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란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 때부터 의미는 달라진다. 연봉 3000만원, 4000만원을 달라는 소리가 아니다. 최소한 20대가 자신의 스스로 돈을 벌고, 저축도 하면서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가족과 다함께 외식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려면 인턴부터 시작할 경우 120~130만원 선은 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께도 참 죄송한 부분이다. 우리집은 1남 2녀고, 부모님은 여전히 맞벌이를 하신다. 그 중 가장 먼저 취업전선에 뛰어 든 나는 이 가정의 장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3억 남짓 아파트의 대출금을 갚으면서도 ‘사회생활을 첫시장하는 너희들에게 빚을 지우게 해서 힘들게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며 자녀들 대학등록금 밀리지 않고, 대출받지 않게 했던 부모님. 자기가 좋아하고,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을 한다니까 응원은 해주겠다만, 88만원 월급 받는 애한테 뭘 바라겠느냐면서 선물하나 사달라고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던 부모님한테 지금도 죄송할 따름이다.

그 후 7개월 간의 인턴 기자 생활도 어찌보면 연장선상의 수준이었다. 대개 수습(인턴)기자의 월급은 120만원~160만원 수준. 연봉으로 따지면 1400~1600만원 수준이다.(혹은 1600~1800만원). 어떻게 보면 월급이 50만원 이상 오른 수준이니, 전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재하면서 든 교통비하며, 전화비가 감당이 안돼 무제한으로 바꾸면서 10배이상 늘어난 통신비(그 이전에는 기본료0 알뜰요금제를 이용해서 월평균 5000~7000원 수준의 전화요금이 발생했다)를 제하고 나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에디터 일을 하면서는 6시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내시간이었고(업무요청이나 다른부서/기관과의 협업의 경우 해당 조직의 근무시간과 맞춰야 하므로 대개 6시 이전에 일이 끝나고는 했다.), 오히려 그만 일을 하고 집에 좀 가라고 서로 장려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사람이 하루 아침 일하고 그만 둘것도 아닌데,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력도 보충해가면서 일해야하지 않느냐는 논리가 통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는 통상 근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하더라도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대다수다. 물론 이건 실력향상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나는 오전/오후에는 취재를 열심히 하고 취재기사를 쓴 뒤, 저녁에는 리뷰 등의 기획기사를 쓰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이 부분은 어차피 그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에 그다지 서운하거나 아쉬운 부분은 아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당직제를 운영하는 대다수의 언론사에서는 주말에도 이슈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순번으로 당직을 세우고는 한다. 그런데 이 당직제라는 게, 실제 자기가 취재를 맡고 있는 분야의 이슈를 다루는 게 주안이 되기보다는, 실시간 이슈 대응을 위한 전담반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네이버나 다음에 1초 간격으로 순위가 변동하는 키워드에 대해 조회수를 순간적으로 올릴 수 있는 기사를 작성하고 대응해야만 했다.

PS. 물론 각 언론사마다 당직이 해야 하는 업무가 다를 수도 있다. 어떤 매체는 ‘온라인이슈팀’을 따로 뽑기도 해서 다음 기자채용 때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대개 3개월 혹은 6개월동안 하다가 때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대 5분동안만 남들이 읽어주는 ‘기사’가 되는 글을 하루에 30개씩 쓰는 정신노동을 누가 수개월을 감내할 수 있을까?


주말 당직이나 주중 당직까지 서는 일에 회의감이 드는 순간부터 조금씩 내 꿈이 사그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저녁에 기사를 한 개 더 쓰는 게 나으니 당직제를 안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차피 막차를 타고 집에가는 건 똑같은 내게는, 내 정신을 갉아먹는 핫이슈성 기사를 쓰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물론 하기 싫은 일까지 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란 것 쯤은 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오답을 써야한다는 걸 강요하는 조직이나 문화가 올바르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만큼 더 큰 죄는 없을 것 같았다. 요즘 일명 ‘기레기’라고 언론사를 지칭하는 말이 바로 조회수에 집착한 나머지 이르른 결과가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언론이란 게, 기사라는 게 이런식으로 조회수에 집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시간에 그 일(이슈성 기사 작성하기)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내 인생의 큰 낭비가 아닐 수가 없었다.

“난 평일 저녁 내내 기획기사 쓴다고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많이 양보한건데, 네이버 실검에나 뜨는 기사나 쓰라고?”
“내가 이럴려고 기자일을 택한 것인가? 이렇게 소모적인 일에 내 시간을 쓰게 만들려면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주면 억지로 하기라도 하지….”

라는 생각까지 미친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데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내가 얻은 결과다.

하고 싶은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연봉이 작으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 당위성을 스스로 찾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데 연봉이 작으면 얼마나 하기 싫을까.

여기서 말하는 일정 수준의 연봉은 앞서 말한대로 3000만원, 4000만원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20대가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 한달 월급 최소 15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의 정도는 되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어떠한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금액은 달라질 수 있을지언정,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나약한 20대라는 소리를 하기 이전에 그들이 충분한 월급을 받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좀 더 살뜰히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연봉과 직장/직업에 대한 경외심은 비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삼성을 욕해도 죽어라 삼성을 가려고 하는 것이련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기업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직장생활때문에 속이 비틀어질 것 같고, 일의 강도가 높은 것이라면 돈이라도 많이 주던가. 그렇게 우리가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88만원을 받고 하더라도 경험을 쌓는다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라도 최소한 120만원은 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ㅠㅠ 생각해보니 88만원은 너무 부족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