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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4. 10:47 - Samantha

[영화]황진이(송혜교, 유지태 주연, 2007) - 핵심과 주제를 잃어버린 영화

“실제 역사에서의 황진이와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보다는 영화의 핵심이 어디에 놓여있는가를 관찰하면 참 답 안나오는 영화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2007년 6월 6일 개봉한 영화 ‘황진이’에 앞서 KBS2에서는 하지원이 주연한 드라마 황진이가 방송되고 있었다. 24부작의 형태로 방영된 드라마는 초기 한류스타 장근석과의 로맨스를 통해 이슈를 만들어냈으며, 이후에는 한복의 맵시가 잘어울리는 하지원이나 상대역으로 나왔던 김재원과의 절절한 로맨스가 연일 화제를 낳고는 했다. 하지만 단연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에는 ‘노력파’였던 ‘황진이’의 모습이 담겨졌다는 점이다.


하지원의 고군분투 연기력도 한몫했겠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극중 ‘진이’가 최고의 기생으로 거듭나기 위해 흘렸던 땀과 노력에 감복한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진이’는 각종 질투나 멸시를 이겨내고 인간승리를 이끌어낸다. 노력하면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설 수도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심어준 몇안되는 드라마였다는 걸로 추억하고 있다. ‘24부작’은 황진이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데 아주 충분하고도 넉넉한 시간이었고, 우리는 야사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벽계수화의 일화라던가, 그녀가 양반들과 주고받았던 한시와 시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러닝타임이 고작 최대 2시간 20분 남짓인 상황이었다면, 굳이 그녀의 인생사를 모두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결국 전부를 다루려다가 ‘핵심’을 잃은 영화.


극중 진이가 놈이에게 배신을 당하는 장면에서 송혜교의 눈빛이 달라진다. 정황상 놈이만 아니였으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양갓댁 규수로, 사대부로 시집간 바른 현모양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놈이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일념 하에 그녀의 정혼자 댁에 찾아가 ‘진이’의 미천한 신분을 까발리고 결혼을 망친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그렇게라도 했어야 했어요. 그렇게 하면 아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줄 알았어요!”


결과론적으로 이 비극은 그녀를 조선시대 계급사회를 조롱하고, 모든남녀노소가 우러러보는 조선제일의 기녀로 만들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자신의 인생의 궤도가 전면 수정되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인고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천민보다 천한 기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진이의 입장에선 ‘놈이’는 철저히 증오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일대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그녀가 왜 양반가에 대해 반기를 품게 되었는지, 어떻게 최고의 기생의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부족했다. ‘5년 뒤’ 평양 제일의 기생이 된 그녀를 비추는 장면은 떨떠름했고, 정작 놈이와는 ‘하룻밤의 정사’이외에는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갑자기 도적떼가 되어 양반들에게서 훔친 곡식을 백성에게 나눠주던 놈이 어설프게 자수를 하고, 결말에선 놈이의 유골함을 들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주제는 무엇인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시대의 여인, ‘황진이’인건가? 아니면 놈이와 진이의 로맨스? 아니면 진이의 기둥서방 ‘놈이’를 질투하는 부임사또? 차라리 송혜교로부터 강인하면서도 당찬 여인상을 이끌어내는 것에 힘을 썼더라면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찬사를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벽계수, 서경덕과의 일화도 감질맛나게 살리지 못한 상황에서는 송혜교가 양반들을 조롱하는 것조차 힘에 겨워보였다. 분명 그녀는 아름다웠으나, ‘유혹’의 색깔은 다소 부족했다.


드라마틱한 결론도출을 원했더라면, 그녀의 일대기 중 역경이나 고난, 시견을 극복한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냈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어차피 다큐나 사실 고증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더 나았을 지도.


그냥 잘생긴 유지태가 왜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는지 이해도 되지 않고, 송혜교라는 좋은 배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참, 거시기했던 영화. 이외에도 주조연 라인이 빵빵함에도 불구, 캐릭터 설정이나 관계가 느슨했고, 스토리는 사건의 클라이맥스도 없이 밋밋할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