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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5. 23:55 - Samantha

[영화]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유쾌상쾌하게 그려낸 그들만의 사랑의 방정식(LGBT 영화제)

영화 시놉시스가 만화로 만들어진 이례적인 사례

요즘 영화-책-연극-뮤지컬 등 컬쳐 트랜드는 “영화”로 관객의 시선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2차적으로 다른 매체를 통해 다시한 번 관객몰이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명한 배우를 기용한 영화, 연극 등의 콘텐츠를 통해 따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봉한 지 상당히 된 영화를 재조명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영화의 네임 벨류를 타고 새롭게 탄생한 작품도 흥행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요즘 추세다. 하지만 여기 조금은 역행하는 사례 하나가 있다. 지난 2012년 6월에 개봉한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이다. 이미 영화로 한차례 성공하고 웹툰이 나온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먼저 웹툰으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두결한장’을 배급한 영화사 진진이 직접 밝힌 비화. 영화 개봉 전 감독이 먼저 ‘호텔 아프리카’등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박희정 작가에게 만화화를 제안했다고 한다. 팬층이 두터운 그녀라면, 충분히 ‘두결한장’의 새로운 흥행의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감독의 탁원한 선택이었던 탓인지,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임에도 대내외적으로 크게 조명을 받은 영화가 되었다.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시달림이 싫은 게이 ‘민수’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법적 남편이 필요한 레즈비언 ‘효진’의 위장결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들을 유쾌발랄한 시각으로 그려낸 영화,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 퀴어 영화는 원래 조금은 무겁고, 뭔가 불편하다는 기존의 사고방식들을 과감없이 깨뜨리는 김조광수의 영화와 박희정 작가의 웹툰! 두 작품 모두 동시에 볼 때 시너지 효과가 분명하다는 건 역시 ‘극명’한 사실.


영화계에선 "앞으로 영화와 다른 문화 장르 간 교류와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제작사 리얼라이즈의 김호성 대표는 "영화 기획 단계에서 원안을 웹툰으로 제작해 관객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들도 검증된 콘텐츠를 찾는 추세여서 장르와 관계없이 좋은 콘텐츠는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참고기사


두결한장, 김조광수 감독의 첫 장편작

‘두결한장’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 <사랑은 100℃> 등 세 편의 단편 퀴어 영화를 만들었던 김조광수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퀴어 영화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퀴어 영화는 칙칙하고 재미없고, 따분하고, 거북스럽다는 세상의 편견을 뒤로한 채 로맨틱 코메디를 살짝 씌운,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볍고 즐겁고, 발랄하게 그려낸 장르일 뿐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 ‘어? 생각보다 정말 유쾌하고, 게다가 재미있다’는 결론까지 내리는 등 사고방식을 바꾸게 됐다.

김조광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찌질하던’ 민수가 커밍아웃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숨어사는 동성애자들에게는 “너를 드러내고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는 민수의 위장결혼 상대방이 레즈비언이라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자, 이 여자를 보는 비난과 경멸의 시선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 회피하기만 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웹툰 속에서는 게이 환자를 상대하다가 그 환자를 바라보는 주변 다른 환자들의 모멸적인 시선을 느낀 민수가 곧 그 방향이 자신에게 돌아올까봐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결국 자신이 ‘게이’라고 외치지도 못하는, 이성애자들의 프레임에 막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는 찌질이 민수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자신만의 사랑의 프레임을 찾으라는 용기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타인을 만족시키면서 나의 행복을 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행복을 당당하게 찾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두결한장 예고편

서울 LGBT 필름 페스티벌

사실 2014 버전 트레일러는 이상향의 동성친구를 만나 수줍어하는 여고생을 그린 듯하다.

한편,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모아 한국에서도 영화제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바로 서울 LGBT 필름 페스티벌을 통해서다.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영화제인 이 영화제(2012년 기준)는 2001년 ‘퀴어 문화 축제’와 함께 ‘무지개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도 됐다. 그 이후 2007년에는 현재 이름인 ‘서울LGBT영화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높이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성소수자인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들의 삶과 욕망을 조망하는게 일차적인 목표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했던 결혼식의 이유.

한쌍의 아름다운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민수와 효진이 바로 새신랑, 새신부가 되는 중요한 행사인 것. 그런데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떠나던 드림카는 뒤따라오던 자동차와 함께 남들의 눈에 잘 뜨지 않는 곳에서 멈춰서고 만다. 그 뒤따라오던 차에 내린 건 또 한 명의 아리따운 여인. 처음에는 이들의 결혼을 결코 말리고 싶어하던 민수의 오래된 애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그녀를 반긴 건 바로 새신부 효진이다. 그렇다. 사실 이 결혼은 두 남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위한 새로운 시작, 발판이 아니라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위장결혼’이다. 사실 민수와 효진은 각각 게이와 레즈비언이다.


‘아들아들’거리는 어머니는 의사겠다, 사지멀쩡한데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는 아들에게 제발 좀 결혼하라면서 선을 보고 여자를 만나라고 성화다. 한편, 효진은 자신이 몇년 간 봐온 아이를 입양하려고 여러가지 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사실 결혼한 부부가 아니면 입양기관에서 허가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인해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마침 서로 원하는 것이 일치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효진은 자신이 사랑하는 서영과 바로 신혼집 바로 앞 집으로 스위트하우스를 얻어 이른바 ‘두집살림’을 차리게 된다. 민수는 그렇게 효진과의 위장신혼생활을 잘 만들어가면서 둘은 알콩달콩잘 살 수 있을 것으로만 기대했다. 그러다가 게이바에서 만난 ‘석이’로 인해 민수도 새로운 사랑, 감흥에 젖어서 핑크빛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순탄한 신혼(?) 생활을 하고 나서, 자진 이혼남 대류에 합류하고 이혼의 상처를 안은 채 프랑스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쉬운 계획은 아니었다.

전화도 없이 시시때때로 신혼집으로 찾아오는 시어머니때문에 여간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다.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반찬을 갖다주겠다고 전화라도 하는 날이면 예외없이 시어머니를 맞이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효진. 민수야 결혼과 결혼 후의 일상이 달라져봤자 “유부남”이라는 수식어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다. 사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라고 겉으론 그렇게 말하지만, 그냥 집안 행사 다니고 남편 대신 집안일해주는 그런 시종이 하나 들인 것과도 마찬가지인 셈. 어쨌든 이리저리 행사에 불려다니고, 일요일 아침에 자다가 불시에 들이닥칙 시부모때문에 효진은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이 결혼을 무를 수도 없는 상황. 이제 효진에게는 법적인 남편이 생겼고, 곧 입양절차에 따라 아기를 입양할 수 있게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기는 너무 어렵다

여성들끼리의 스킨쉽은 꼭 레즈비언이 아니더라도 손잡고, 팔짱끼는 등의 애정표현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유독 남자들의 스킨쉽에 있어서 주변사람들이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실. 그렇기에 민수는 ‘석이’와 애인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밖에서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스킨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민수는 ‘찌질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남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철저하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겨버린다. 자신 스스로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언제까지나 이를 회피하고 침묵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효진이가 병원 내에서 레즈비언이라는 구설수에 오르자 자신에게까지 오게 될 경멸의 시선을 참지 못하고 석이에게 함께 프랑스로 떠나자고 설득한다.

“프랑스에 가면 게이는 내 캐릭터일 뿐이다. 내가 그냥 떠나주면 되잖아.”
“외국가서 살면 자유로울 줄 알아! 지나다니는 동양인만 봐도 가슴이 철렁한다구. 우리 한번 숨기 시작하면 끝까지 숨어 살아야 돼!”


자유분방한 사고 방식을 지닌 사회에선 자신이 게이라는 게 캐릭터일 뿐이므로, 적어도 한국에서보다는 잘 살 수 있다며 민수는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석이는 한사코 민수의 청을 거절한다. 한국에서도 숨어살았듯이, 프랑스든 미국에서든 어디에서도 결코 자유롭게 민수와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택시를 타다가 택시기사로부터, 웹툰에서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다가 옆 테이블 남자로부터 ‘호모새끼’라는 막말을 들으면서 작은 말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이 다툼으로 인해 다음 날, 민석과 석이의 친구 ‘티나’가 교통사고로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 타인의 눈과 귀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그렇게 성소수자는 욕을 먹고, 죄송하다는 말만 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도대체 이들이 잘못한 것은 무엇이기에 이성애자들에게 잘못을 구하고, 살인이라도 저지른것마냥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해야만 하는 건가.


“이성애자의 이해를 구해야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 이성애자의 포용을 구하는 게 정상인 것이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성애자로, 당연히 이성애자의 사고방식대로 꾸려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너를 배척하고 따돌리고, 욕하고 때릴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되묻고 싶다. 단지 그게 사랑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 뿐이지, 사랑하는 대상이 우리보다는 조금 다른 것 뿐이지, 그들도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에 동반하는 애정행위를 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교제하는 데 무조건 이성애자의 100% 동의를 구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이성애자에게 한 번 물어보고자 한다. 당신이 선택한 애인, 남자친구, 여자친구, 배우자들을 다른 불특정 이성애자들에게 양해와 이해를 구하고 만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이해를 구고, 양해를 얻은 뒤 그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사랑을 나누는 것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동성애자들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애자에게 무조건 허락을 받아야만 사랑해야 할 의무는 없다. 우리 이성애자들이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포용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를 두고 사회에 반하고 자연의 이치에 걸맞지 않으며, 인간의 번영과 종족 번식에 합당하지 않은, 반인륜적이고 비자연적 행위라고 폄훼한다. 그런데 이성애자들도 종족번식보다는 쾌락만을 위한 섹스를 추구하는 경향이 더 짙은 것은 아닌지 되려 반문해본다면? 이성간의 섹스는 남자-여자의 결합으로 다른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이 있는 것 뿐이지, 사실 그에 수박되는 행위의 가장 근원적인 목적에는 바로 ‘쾌락’이 아닌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자들을 경멸해야 할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사회분란은 내가 먼저 나서서 ‘포용’하면 된다. 그냥 이런사람이 있고, 저런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잘생긴 사람, 키큰 사람을 좋아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동성/이성도 하나의 기호로 생각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직은 사회에서 널리 포용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 있는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가족이 많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언제나 늘 맞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별 능력도 없고, 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것처럼 버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럽고 잘나고 멋진 남편이 될 사람일 수는 있다. 겉으로는 아주 괜찮고, 겉보기엔 잘생겨보여도 실상은 그 누구보다 추잡하고, 태만한 사람일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이는 사람,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큰 오산일 수가 있다. 시각을 넓혀보고 싶다면 우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사랑도 있다는 생각의 ‘포용’을 시도해야 한다. 나와의 생각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고, 무조건 욕하고, 혹은 생각이 같다고 해서 무조건 옹호하고 찬성하기 보다는, 다양한 색깔을 뿜어내는 스펙트럼처럼 그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첫 시작이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다보면 ‘성’을 하나의 기호로 인정해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어차피 그들의 인생이기에, 내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